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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만의 다정한 위로, 오소영 * 일시 : 2010. 08. 12 (목) PM 8:30~10:15 * 장소 : 상상공장 *사진촬영 : ...

by 김기자  /  on Mar 14, 2011 15:26
그녀만의 다정한 위로, 오소영

 

 

* 일시 : 2010. 08. 12 (목) PM 8:30~10:15    * 장소 : 상상공장

*사진촬영 : 20분    *인터뷰: 1시간 20분    *녹취타이핑&정리: 박재윤    *사진: 박재윤

*인터뷰&에디팅: 김기자    *인터뷰 참가자: 김기자, 김주연, 박재윤

 

*오소영 홈페이지 : http://www.osoyoung.com    *트위터 : http://twitter.com/oso0

 

 

 

1. 어렸을 때부터 기타를 치고 포크음악을 좋아했다고 들었어요. 작곡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나

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제가 친구도 없고, 집에만 있는 타입이여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라고 어머니가 기타를 사주셨어요. 작곡은 중학교 때부터 습작 수준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곡이 너무 짧거나 제 스타일이 없었기 때문에 쓸 만한 곡은 거의 없었고요.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나갈 때 즈음 제 스타일이 나름 생기고 마음에 들게 곡을 완성한 것 같아요.

 

-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나갔던 것이 대학교 2학년 때니까, 6~7년 정도 습작들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사실 제가 야외활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방과 후에 집에 가서 기타치고 노는 것이 일상이였거든요. 중학교 때 저희 집 부엌이 타일로 되어 있어서 소리의 울림이 좋았어요.(웃음) 그래서 방과 후에 혼자서 ‘포크송 대백과사전’ 같은 책을 보며 기타를 치고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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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학교 시절부터 간간히 곡도 만들어 보고 포크송도 연주하셨는데요.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던 건 언제쯤이세요?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이 든 건 중학교 들어가면서 습작을 만들면서 부터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노래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 노래를 하며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 주변에서 음악적인 영향을 준 인물이 있었나요? 형제 중에 음악을 좋아한다거나, 부모님이 음악을 하셨다거나요.

 

글쎄요. 그 때는 TV보다는 라디오를 듣던 세대였었는데 6살 차이나는 언니가 음악을 듣는 것을 많이 좋아했어요. 아무래도 저도 언니와 계속 같이 있었으니까, 같이 노래하고 놀고 그런 식이었고요. 어릴 적부터 노래하는 것을 제가 특히나 좋아했던 것 같아요. 동요 같은걸 부르는 것도 좋아했구요. 뭔가 노래로 음을 만들어서 부르는 자체가 재밌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그 때는 음악이 일이라기 보다는 다 놀이였죠.

 

- 대학 때 전공은 어떤 걸 하셨어요? 음악쪽으로 진로를 생각하셨는지요?

 

제가 전공은 잘 이야기를 안 하는데요(웃음), 컴퓨터 공학이에요. 그때는 음악으로 학교를 갈 엄두를 못 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음악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그런 입장이었어요. 

음악을 좋아하지만 제가 집도 부산이라서 음악적 교류를 할 만한 사람도 없었고요. 그냥 혼자서 기타치고 곡 만들고, 노래 부르는 것이 다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당시에 컴퓨터가 유망직종이었던 이유도 있어요.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컴퓨터 공학쪽으로 과를 정했는데 공부는 안했고 가까스로 졸업은 했습니다. 의외로 주위에 음악하는 친구들 중에 이과가 많아요. 주위에 친한 친구들은 전부다 공대생이에요.

 

3.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당시 뭔가 수상에 대한 예감이 있었나요? 

 

사실 당시 쓴 곡은 유재하음악경연대회를 노리고 곡을 썼달까요?(웃음) 제가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기념음반들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1회 때가 조규찬씨였는데 앨범을 들었더니 곡들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그 음반들을 즐겨 들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제 스스로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계기로 삼아 출전했던 것이고요. 그 당시에는 제 스타일이 있다기보다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의 음악들을 어느 정도 모방한 점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다행히 음악에 제 색깔이 나와서 운 좋게 수상했던 것 같아요.  

제가 동상을 받게 되서 풀이 좀 죽어 있었어요. 아무래도 상금도 차이가 많이 나고,(웃음) 기분도 다르잖아요. 제가 풀이 죽어 있었던 것이 보였는데 심사위원으로 오셨던 조동익 선배님이 제 옆으로 오셔서 “실망 하지 말라”며 힘내라고 북돋아 주셨던게 기억이 나요. 그래서 기념사진은 굉장히 환하게 웃으면서 찍었었죠.(웃음)

 

- 어떻게 보면 그 일이 하나음악으로 입성하게 된 작은 계기가 됐겠네요.  

 

네. 인연이 생긴 거죠. 그 때 이후로 친해진 몇 명의 선배님들이 있는데 특히 ‘낯선 사람들’의 신진 씨와 계속 연락을 했어요. 신진 씨가 부산에 오시면 보기도 했구요. 무엇보다도 신진 씨가 함께 하나음악 컴플레이션 앨범을 해보자고 연락을 주셨었고, 그래서 데모 테이프를 보내 데뷔 앨범을 녹음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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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소영 씨가 직접 몸담았던 당시의 하나음악은 어땠나요? 

 

제가 처음에 들어갔을 때도 '하나음악'은 음반을 만드는 회사라기보다는 공동체 같은 성격이 강했어요. 제가 사람들과 못 어울리는 편인데도 거기서는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었고요. 거의 모든 하나음악 선배님들이 개성이 강한 사람이 와도 그걸 충분히 아우를 수 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으셨거든요. 후배들에게도 음악을 가르치기 보다는 느릴 수도 있지만 스스로 알아서 깨우치게끔 하셨어요. 저도 워낙에 느린 편인데, 그런 분위기가 굉장히 편안하게 다가왔어요.

 

- 지금도 한국의 대중 음악사를 얘기할 때 하나음악이 많이 거론되는데요. 그런 특별한 음악 공동체가 지금 활동을 안하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무엇보다 하나음악의 음악들이 예전부터 주류가 아니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또 올곧게 한곳으로 가는 선배님들을 보면서, 후배들이 그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음악에서 세상과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 있었을 수도 있구요. 그런 점들이 들으시는 입장에서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는 하나음악의 선배님들이 계속 음악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충분히 음악을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하나음악에 들어가기 이전에도 하나음악의 팬이었기 때문에 더 안타까워요. 인터넷에 종종 많지는 않지만 하나음악이 팬 분들이 항상 음악이 나오기를 기다리겠다고 말을 해주시더라구요.

 

- 그럼 하나음악에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은 어떤 것이 있으세요?

 

제가 지금은 술을 안 먹지만, 그 당시에는 술을 조금 마셨어요.(웃음) 그 전에는 그런 분위기를 잘 몰랐었는데 술을 먹고 서로 마음을 터놓는 것들이 너무 즐거웠어요. 술을 잘 못 먹어도 억지로 권하지 않는 분위기도 그렇고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하나음악에서 느끼면서, 제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이 많이 정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 하나음악 활동 때문에 부산에서 상경하셨다고 들었어요. 이후로 서울에 계속 혼자 계셨던 건가요? 

 

상경한 이후로는 계속 혼자 있었어요. 사실 방 구할 돈도 없어서 아는 친구 집에서 얹혀살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 때는 거의 하나음악에서 살아서(웃음) 외롭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던 것 같아요. 음악을 하게 됐다는 사실도 좋았구요. 무엇보다 제가 어릴 적부터 항상 음악을 즐겨 듣던 하나음악에서 제 음반을 하자고 해주시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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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2.06 발매_ 오소영 1집 <기억상실>  

 

 

5.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하나음악에서 1집 음반이 나온 후, 8년이라는 긴 공백기가 있었는데요. 그런 방황의 시기는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요?

 

세상을 살다보면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있고, 나쁜 일이 있을 때도 있잖아요.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하나음악에서 1집을 만들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후로 제가 많이 힘들어지고 나쁜 일이 많이 생기면서 극복을 못하고 음악을 할 엄두를 못 냈어요. 인생의 암흑기랄까요. 그런 시간이 그 8년인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음악을 안했던 삶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 같은 삶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8년의 시간동안 음악을 못하다가 2집 앨범을 내고 활동을 시작하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가 중견가수인 줄 아시더라고요. 제 마음은 작년에 다시 데뷔한 신인 같아요. 오히려 많이 활동한 후배들보다 제가 모르는 것도 실제로 많고요. 아직도 적응하고 있는 중이에요.

 

6. 곡들을 보면 무언가 보편적이지 않은 굉장히 특별한 느낌이 드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곡이 쓰여지나요? 

 

저는 자극이 하나 주어지면 그걸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서 곡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곡은 DEXTER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너무 감명을 받아 그 주인공의 어둠에 제 이야기가 동화되면서 시작된 곡이거든요. 그렇게 자극이 오면 곡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어떤 패턴이 정해져 있는것은 아니고요. 곡을 쓰고 싶을 때도 있고, 기타조차도 치기 싫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저한테 와 닿는 것이 있다거나, 큰 사건이 생길 때는 꼭 곡을 썼던 것 같아요.

 

- 구체적으로 코드나 멜로디 등을 만드는 작업은 어떻게 하시나요?

 

예전에는 기타로 보통 작업을 시작해서 멜로디를 붙이고, 가사를 붙이는 스타일 이였어요. 그런데 그런 방법에 제가 너무 얽매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 가사를 운율에 안 맞춰서 쓴 이후에 곡을 쓴다거나 그런 식으로 스스로 훈련하기도 해요. 그렇게 몇 번 훈련을 하니까 정해진 것 없이 편하게 곡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가사를 먼저 쓴 이후에 곡을 붙일 수도 있고, 멜로디를 만든 이후에 가사를 붙이기도 하구요.

 

7. 처음 공연을 봤을 때 차갑고 시린 달빛 같은 특별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오소영 씨의 가사가 그런 느낌에 한 몫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사는 어떻게 작업을 하시는지요.

 

어릴 적부터 뭔가 떠오르면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것이 연습이 된 것 같아요. 메모들을 다 쓰는 것은 아니고요. 가사를 쓰다 막히면 메모를 보는 식이에요. 책을 읽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 하는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 시집을 많이 읽으시나요?

 

제가 너무 둘러서 은유 하는 것은 좀 못참아서 잘 읽지는 않아요.(웃음) 류시화 씨의 시 정도는 괜찮은데 다른 시들은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가사를 쓸 때 너무 둘러서 얘기하는 건 안 좋아해요. 은유는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장점도 있지만, 지나치면 너무 모호해서 듣는 분과의 소통이 어렵다는 단점도 있는 것 같아요.

되려 판타지 소설이나, 잔잔한 소설들을 많이 읽어요. 작년 말 인터뷰할 때 1Q84 2권을 읽고 있었는데요. 최근에는 3권을 읽고 있어요.(웃음)

 

- 호러 영화를 좋아하신다던데요.  

 

네, 호러영화 좋아해요.(웃음) 전에는 아벨 페라라 감독도 좋아했어요. 그런데 영화는 워낙 코메디, 로맨스, 호러, 판타지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에요. 다만 액션이나 전쟁영화는 잘 안 봐지더라구요. 그리고 가끔씩 어린이 영화, 특히 디즈니 영화를 보면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8. 음악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부분에 있어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저는 무언가 '가장'하는 것을 못해서요. 그저 제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감정들을 그대로 쏟아낼 뿐이에요. 딱히 제 색깔을 표현해야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제가 '툭'하고 던지는 걸 들으시고 '이건 오소영의 색깔이구나' 라고 말씀들을 해주시더라구요. 제가 워낙 어두운 면이 많아서 그것이 개성으로 느껴지실 수도 있고요.

 

- 음악이 마냥 어두운건 아닌데요. 세상과의 부조화, 슬픔, 쓸쓸함 등과 함께 항상 반대편에는 조화를 이루려는 이야기들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제 성향이 지독하게 어두워서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잘 바뀌질 않아요. 제 음악이 너무 어두워서 듣는 분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런데 제게 ‘난 늘 왜 이리도’나 ‘해피 피플’ 같은 분위기의 노래가 안 어울린다는 분도 있더라고요. 사실 그 두 노래가 제가 밝게 쓴 노래는 아니거든요. ‘난 늘 왜 이리도’의 가사를 잘 보시면 가사 안에서 해결이 안돼요. ‘난 왜 이렇지?’ 라는 내용이거든요. ‘해피 피플’의 경우에도 ‘그래 됐다. 이게 행복 한거야‘ 라는 내용이에요. 예전에 이장혁 씨 인터뷰를 봤을 때 ‘희망은 없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저도 희망을 노래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듣는 분들 입장에서 희망을 느꼈다면 그것도 맞는 것이에요. 해석은 자유니까요. 저 자체는 밝은 걸 노래해야겠다, 어두운 걸 노래해야겠다는 게 아니고 제가 갖고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노래에 담을 뿐이에요. 순간 순간들에 따라서 김기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밝은 내용이 들어있을 수도 있고, 완전히 어두운게 아닐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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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2월 19일 상상마당에서 열렸던 콘서트 사진_ 인디 속 에디터 박창현

 

 

9. 음악에서 보이스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노래가 있는 곡들은 목소리가 중심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목소리가 노래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곡의 분위기를 결정하기도 하구요.

 

- 목소리에 대해서 연습이라든가 고민들이 있으셨나요?

 

워낙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서요. 어릴 때부터 장르에 관계없이 머라이어 캐리나 락도 부르면서 노래를 다양하게 불렀던 것 들이 아무래도 노래 연습이 많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1집 곡들을 녹음하면서 저만의 색깔이 정리가 된 것 같아요.

 

10. 오소영씨의 노래는 목소리, 가사, 곡이 삼위일체가 돼서 특별한 색깔을 내는 것 같아요. ‘기억상실‘이라는 곡의 내용이 꿈 이야기라고 하셨는데요. 지금 봐도 굉장한 대범한 가사에요.

 

그때 제가 하나음악에 합류하기 이전이라, 진로가 확실하지 않아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음악을 계속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고요. 집에서 잉여생활을 계속 하고 있던 시기라 너무 힘들었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었어요. 그런데 그런 힘든 것들이 꿈에 그대로 나타났던 거죠. 힘든 일이 있으면 저 혼자서 삭히는 편이거든요. 그러다보니까 그렇게 가사와 곡을 쓰면서 제가 위로를 많이 받기 때문에 그런 가사가 쓰여졌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그 과정에서 치유가 되요. 다행히도 들으시는 분들도 많이 치유가 된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특히 제 1집 같은 경우는 술 마실 때 신세한탄을 하거나 직장상사를 욕하면서 들으시면 좋습니다.(웃음)

 

11. 음악에서 나타나는 어떤 외로움, 부적응, 쓸쓸함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제 정서가 약간 어둡고, 성격자체가 차가운 구석도 있고요. 어딜가도 잘 섞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유년 시절부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지금와 생각해보면 약간 성장이 빠른 것도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167cm였거든요. 그 당시만 해도 키가 큰 아이들이 없어서 제가 전교에서 가장 컸어요. 친구들이 뭘 하고 놀자고 할 때도 그게 '재밌는걸까?' 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천성적인 것 같기도 하고요. 어릴 때에도 다락방에서 혼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부모님이 걱정을 하셨으니까요. 한편으론 재미없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게,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할 때도 제가 고무줄을 잡으면 키가 크니까 그냥 이겨서 재미가 없는 거죠.(웃음) 친구들과 같이 놀아도 머리 한 개가 툭하고 더 솟아 있으니까 완벽하게 그 집단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지는 것도 있었고요.

지금도 친한 친구들이 몇 명 있지만,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즐기는 것들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걸 누가 가르쳐 주는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제가 혼자서 놀 수 있는 것을 찾게 되었던 것 같아요.

 

- 사실 키 같은 경우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점에는 비슷해졌을텐데요. 어릴 적의 경험 때문에 약간 그런 성향들이 남아 있었던 것 같네요.

 

네, 아마도요. 그런데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친구들하고 잘 지냈어요. 그때는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시기였거든요. 여학교 같은 경우에는 노래를 부르면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잘 따르는 것도 있었구요. 제 첫 전성기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애들하고 웃을만한 일이 없다가 제가 노래를 부르면 좋아해주고 그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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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9.18 발매_ 오소영 2집 <a Tempo>

 

 

12. 1집과 2집, EP의 의미를 각각 짚어 보신다면요?

 

우선 프로듀서가 다 틀리죠. 1집 같은 경우는 조동진 선배님이 프로듀서를 맡아주셨구요. 편곡과 음악감독은 조동익 선배님이 해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마음을 푹 놓고 있었고, 제 곡의 분위기가 변하지 않게끔 하자는 분위기였어요. 2집 같은 경우에는 오랜만에 나오다 보니까, 제가 혼자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다오 씨와 같이 공동 작업을 하면서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특히 편곡은 제가 2집 때 처음 시작했거든요. 그 전까지는 편곡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 있었어요. 주위의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직접 편곡을 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제 음악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준 게 2집이고요. 또 2집을 내면서, 1집보다는 조금 더 밝게 만들어 보고 싶어서 조금 밝은 음악들을 넣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둡게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웃음) 최근에 나온 EP는 더 편안한 곡을 넣고 싶어서 박용준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렇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에게 맞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것 같아요.

 

13. 편곡 작업은 보통 어떤 식으로 이루어 지나요?

 

어떤 노래는 한 번에 편곡이 다 떠오르는 곡도 있고요. 그래서 그대로 데모를 만들어서 세션분께 들려주고 바로 만들기도 해요. ‘돌이킬 수 없는’ 이라는 곡의 경우엔 악기 멜로디도 제가 만들어서 직접 녹음한 곡이기도 하고요.

2집의 세션은 오래 알던 친구들이라 제가 어떤 것을 말하면 잘 이해하고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다 같이 만들어 낸 곡도 있었어요. 그런 곡들은 대략적으로 악기의 톤과 템포 정도만 정하고 코드 안에서 플레이는 자유롭게 진행을 하죠. 그러다 좋은 것들이 나오면 제가 캐치를 해서 '이걸로 하자'라는 식으로 작업을 했죠. 

보시면 이다오 씨와 제가 공동 프로듀서로 되어 있어요. 제가 편곡을 처음 하니까 진행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 도움을 요청하면 이다오 씨가 도와주는 방식으로 함께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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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05 발매 / 오소영 EP <다정한 위로>

 

 

14. 이번 EP <다정한 위로>는 쟈켓부터 밝아요. 저번 앨범과 비교하면 1년이 채 안걸렸는데요. 정규 앨범이 아닌 EP로 내신 이유와 이렇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요?

 

사실 EP 작업이 들어가고 난 후로는 오래 걸린 편이에요. EP의 곡들은 거의 기존에 써놨던 곡들이거든요. 2집 앨범에서 빠진 곡들도 있고, 2집 이후에 쓴 곡도 있구요. 보통은 EP니까 '가볍게 가지 않았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앨범을 위해 써놨던 곡들을 아낌없이 넣은 거에요. 제가 여러 가지들을 작년에 시작해서 아직까지는 여러 가지 매체와 작업방식들을 많이 배워가고 있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면 어떨까 해서 앞으로 좋은 걸 더 만들 수 있게끔, 말하자면 제 나름대로의 학습인 거죠.

 

- 앞으로도 진취적으로 작업을 계속해 나가실 분위기겠네요.

 

제가 힘 닿는데 까지는 그렇게 하고 싶어요. 요즘 생활을 해보니까 일단 음악으로는 생계가 해결 되지가 않아서, 알바와 함께 같이 가야 하는 형편이에요. 그래서 아무래도 계속 무언가를 하는 것은 힘들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다음 정규앨범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요. 제가 너무 급하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조절하려 노력하는데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해봐야 아는거니까요.

 

15. 2집 앨범이 많은 호응을 얻었잖아요. 힘이 많이 되셨는지요?

 

사실 제가 오래 쉬다 나왔으니까 걱정이 많이 됐어요. 워낙 1집 앨범이 훌륭하신 선배님들과 작업을 했기 때문에 2집 앨범은 하나음악에서 나오는게 아닌데, 사람들은 하나음악과 연결해서 생각을 할 것 같았어요. 2집 앨범 중에서 편곡이 미숙한 부분이 분명 있을텐데 하나음악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선배님들은 음악이 좋은데 왜 그런 걱정을 하냐면서 격려해 주셨죠.(웃음)

 

- 8년동안 음악을 거의 안하셨잖아요. 그런데 2집이 이 정도로 나왔을 때 는 엄청나게 노력을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고민도 많이 하시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으신게 음악에 녹아나거든요.

 

관건은 2집 앨범의 편곡작업을 집중도 있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편곡을 위해서 따로 작업실을 하나 구했었거든요. 사실 곡을 쓰는 경우에는 상관이 없지만, 집에서 하는 작업은 집중도 있게 잘 안되죠. 편곡은 말 그대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될 때까지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그냥 계속 틀어박혀 있는거죠. 그래도 그 시간들이 유용하게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에요. 제가 8년 동안 공백기를 가질 때 곡을 쓰기도 했었지만, 재미삼아서 플룻을 독학으로 했었어요. 사실 플룻은 처음에 소리내기도 굉장히 힘들거든요. 다른 분들이 1개월 진도 나갈 것들을 저는 독학으로 하기 때문에 1년 정도 걸리는거죠. 플룻도 친구가 장식용으로 쓰던 걸 준 거라 소리가 거의 안났어요.(웃음) 잘 다루는건 아니지만 제가 악기 다루는 걸 재밌어 하니까 재밌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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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작업은 언제부터 배우신건가요?

 

제가 미디는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녹음을 해서 멀티 트랙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정도로만 배웠거든요. 건반은 그냥 치면 되는 거고, 악기는 그냥 위에 얹는거죠. 플룻도 직접 연주하니까 복잡한 입력과정 없이 녹음기를 이용했어요. 어차피 제가 전자음악을 하는것도 아니구요. 샘플을 쓰기도 했었는데, 워낙 잘하시는 해오 씨 한테도 부탁을 한 적이 있구요.

  

16. 20대에 쓸 수 있는 가사와 30대 때 쓸 수 있는 가사가 있잖아요. EP <다정한 위로>같은 경우에는 삶에 대해 한결 성숙해진 성찰이 돋보이는데요.

 

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가사가 변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평상시에는 잘 못 그러니까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까놓고 가사를 쓰는걸 좋아했어요.(웃음) 그런데 꼭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나쁜 일을 맞이했을 때 받아들이는 강도가 약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엔 너무 힘들었는데 이젠 제가 힘든 일도 편하게 안을 수가 있더라구요. 그렇게 제가 변화되는 사고 방식이 가사에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해요.

 

- 이번 EP의 타이틀이 다정한 위로에요. 다정한 위로를 받고 싶으신거죠?(웃음)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요? 살다보면 하루 중에서도 힘든 순간이 있잖아요. 누구나 다정한 위로가 필요한데 사실 이 곡에서도 해결이 되지는 않아요. ‘다정한 위로‘라는 제목을 보시면서 이 노래의 내용이 '다정한 위로를 하는 가사가 아닐까?' 하시는데 그게 또 아니거든요. 제가 그런 식의 반전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웃음)

 

17. 인디씬 초창기 뮤지션들의 경우 90년대 중반에 음악을 시작해 지금까지 음악을 했다면 서른 후반에서 마흔 그 즈음 일텐데요. 사실 그런 세월 만큼 성숙된 시각과 가사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물론 현실적으로 그렇게 음악을 오래 하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오소영씨의 가사가 원래도 시적이시지만, 이번 EP 가사는 삶에 대한 진중한 깨달음과 담담한 마음이 잘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아서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소영씨의 10대,20대,30대에는 어떤 변화가 있으셨고, 어떤 생각들을 갖고 계셨는지요?

 

저는 10대 때 다른 아이들처럼 뛰노는 것을 못해서요. ‘왜 살아 있는걸까’ 라는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사춘기 때 너무 어두운 것에 꽂혀 있었죠. 그런 감정들이 20대까지 이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생각해보니까 어두운 감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장점이 없더라구요. 나쁜 감정과 나쁜 일들에 집중을 하게 되면 늪처럼 끝도 없이 바닥으로 계속 내려가게 돼죠. 지금 내 상황이 나쁘니까, 이것보다 더욱 나쁜 일은 안 생길꺼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30대가 되면서 그런 것들을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젠 기대를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어릴 때는 희망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나아진다거나, 성격을 파헤치고 나갈 수 있는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런 것은 사실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와야 된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물론 그래도 어둡습니다만.(웃음)

 

- 그런 어두움에 대한 애정이 한편으론 오소영의 음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네. 제 음악에 그런 게 녹아있는 거니까요.

 

- 이번 앨범에서 가장 아끼시고,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한 곡을 추천 하신다면요?

 

이왕이면 타이틀을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타이틀도 무섭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웃음) ‘다정한 위로’는 제가 아끼는 곡이기도 하지만 박용준 씨께서 굉장히 편곡도 잘 뽑아주셨어요. 제 기존의 곡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실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18. 예전엔 하나음악 같은 곳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다면 인디씬에서가 아니면 하기 어렵게 됐어요. 오소영씨가 활동하시면서 본 인디씬은 어땠나요?

 

깊이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힘들게 음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친분이 있는 분들은 거의 없는데, 최근에 이장혁 씨와 함께 공연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제가 이장혁 씨에게 ‘우리는 진짜 비싼 취미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라고 얘기를 했었거든요. 집에서 지원이 있지 않다면 거의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해요. 다들 어렵게 시간에 쫓겨가면서 말이죠. 그런데 음악을 완전히 전업으로 하면서 시간을 투자하는 음악은 틀리거든요. 돈을 많이 들일수록 좋아질 수 밖에 없고, 녹음실도 좋은 데서 쓸 수 있는거죠. 진짜 음악을 하고 싶은 분들도 많고, 잘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생활문제와 경제적인 문제들이 해결이 안되는 거죠. 후원을 받으면 자신의 음악을 펼칠 수 있는 분들이 더 못 올라오고 있는 상황들이 안타까워요.

 

 

76.jpg

 

 

 

19. 인터뷰를 하면서 보니까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직장을 다니시는 분들은 별로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하는 경우가 많죠. 대신 술을 마신다거나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는 등의 여가로 스트레스를 푸는데 음악하시는 분들은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계가 유지가 안되니까 따로 돈을 버는 일을 하잖아요. 결국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따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서 하는 일이죠. 그래서 다들 힘들어 보여요. 노래를 할 때는 희망차고 즐겁고. 노래가 좋아서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데 노래가 끝난 후에는 더 지치는 그런 것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아닌 것을 경험을 한 사람이라서요. 하나음악에 있을 때는 전부 다 음악이 전업이시잖아요. 사실 핑계 같기도 하지만 음악하는 사람들이 다들 놈팽이 기질 같은게 있다고 생각해요. 놀고 먹자가 수반 되어야 곡도 잘 써지는 그런 게 있다고 생각이 되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보장되지 않으면 나올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안나올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20. 요새 인디씬에서 즐겨 듣는 음악이라든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으세요? 

 

작년에 검정치마의 음악을 즐겨들었고 오지은씨도 좋았어요. 이장혁씨의 음악에서는 가사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좋아하구요.

  

- 사실 인디 속 밴드이야기에서 ‘김기자의 어쿠스틱 가든’이라는 미니콘서트를 7월에 했었어요. 중간중간 인터뷰를 하는데 이장혁씨께서 자기가 남자 쪽에서 물을 뿌리는 사람이라면, 오소영씨는 여자 쪽에서 물을 뿌리는 사람이라고 하시더라구요.(웃음)

 

네, 저희 둘이 관객 정리반이에요.(웃음)

 

- 그리고 또 친한 뮤지션분들이 있으시다면요?

 

저는 이규호 씨라든가, 해오 씨와 작업을 같이 하면서 친해졌고요. 이다오 씨와도 친분이 있어요. 이장혁 씨 같은 경우에는 가사를 들어보면 제가 생각하는 것들과 중복이 되는 부분이 많아서 공감이 굉장히 많이 가요. 사실 취향도 많이 비슷하거든요. 이장혁 씨도 덱스터를 좋아하시고.(웃음) 그래서인지 친근한 느낌이 들어요. 해오씨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잘 만든 앨범인데도 조명을 많이 받지 못한 점이 안타까워요. 이다오씨는 앨범 작업기간이 오래되다 보니까 예전 작업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엎고 이런 과정들이 있어서 앨범이 늦어지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이다오 씨의 음악은 굉장히 우주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잘 연출하는 그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규호 씨는 대중적이면서도 자기 색깔과 자기이야기는 확실히 하시는 것 같아요. 다들 서로 자신만의 색깔이 있어서 서로 영향도 많이 받아요.

 

조정치씨는 최근에 앨범이 나와서 앨범교환식도 가졌어요. 굉장히 음악을 잘 하는 친구에요. 이번 앨범도 자기만의 색깔이 확실히 표현된 게 마음에 들더라구요. 사실 작년 여름에 제가 조정치씨 앨범의 코러스 작업을 도와줬어요. 그런데 후반 작업이 너무 길어져서 앨범이 올해 여름에 나왔는데 기억이 안나더라구요.(웃음) 저부터 그러기는 합니다만 다른 뮤지션 분들도 조금은 음악작업이 느리기도 하고, 또 현실을 잘 인지하고 있으니까 너무 많은 기대들을 하지 않아요. 그래도 재밌게 공연도 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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