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뷰어로 보기

[인디속 대담] 롤리팝 뮤직, 10년 간의 궤적 _ 서준호 대표(뮤지션 볼빨간)& 김기자 * 일시 : 2010. ...

by 김기자  /  on Mar 14, 2011 15:33

[인디속 대담] 롤리팝 뮤직, 10년 간의 궤적

 

_ 서준호 대표(뮤지션 볼빨간)& 김기자  

 

 

* 일시 : 2010. 09. 30 (목) 14:50~16:30    * 장소 : 상상공장

*인터뷰: 1시간 40분    *녹취 타이핑 & 정리: 박재윤    *사진: 박재윤

*인터뷰 & 에디터: 김기자    *인터뷰 참가자: 서준호(볼빨간), 김기자, 박재윤

 

*롤리팝 뮤직 : http://lpop.tistory.com/

 

 

 

인디 씬이 태동한지 대략 15년. 기억속으로 사라져간 클럽들과 레이블, 웹진들이 있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밴드들이 사라졌고, 현재도 관계자들의 얼굴을 익힐만하면 사람이 바뀌는 경우가 심심찮다. 척박한 인디씬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닥 다를게 없는 걸까? 홍대에 발을 디딘지10년에 접어든 올해,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나 근무하던 상상공장의 기획 일을 접어두고 2008년 10월부터 '인디 속 밴드 이야기'에 올인하면서 밤잠을 설치며 살아남을 방도를 고민했지만 이것 저것 벌려봐도 그닥 뽀족한 수가 없었다. 몸져 눕기도 여러 번, 이제 만 2년을 채우는 인디 속의 '나 홀로 항해'도 약발이 떨어질 때 즈음 10년차 레이블 '롤리팝 뮤직'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덜컹' 왠지 모르게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나름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던 롤리팝 뮤직이 폐업이라니?' 문 닫는다는 말에 문전성시를 이뤘던 클럽 스컹크 헬의 마지막 공연이나 모 라디오 방송 막방 후 게시판과는 다르게 주변은 잠잠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떤 연유일까? 인터뷰를 할까? 문닫은 마당에 좀 그런가?'

맘속은 여러가지 생각들로 어지러웠다.

 

올해의 쌈싸페(쌈지 사운드 페스티벌)를 떠올려 보면 작은 클럽에서 축소되어 진행된 쌈싸페에 대해 대다수의 리스너들은 그닥 메리트를 못느끼는 듯했다.(물론 작은 클럽이므로 관객들은 만원이었다고 한다.) 소비자는 소비자이므로 야외에서 벌어지던 잘나가는 쌈싸페가 더 구미가 당기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미디어의 역할은 조금 다르다. 인디 속에서는 작은 클럽에서 진행됐던 쌈싸페를 취재했다. 이번에도 롤리팝 서준호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인디 속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 광고에서 역사는 1등만 기억한다고 했던가?        

 

이 광고는 당시에 여러가지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 한 코메디 코너에서 이 광고 문구를 인용해 만든 유행어가 한동안 대유행하기도 했다.(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사실 이 광고에는 알고 보면 나름의 사연이 있다. 어쨌든 광고를 만든 피디는 이 광고는 현실을 반영한 것일 뿐이므로 문제는 '광고'가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세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멘트를 그렇게 싫어한 것 같기도 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 애초에 사라질 것도 없이 존재하지도 않은 것처럼 사는 더 많은 사람들. 왠지 모르게 나는 측은한 심정이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내가.   

 

한 숨 한번 푹 내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 작은 일을 또 한 번 용기 내어 해보는 수밖에...

 

 

 

 

1. 오늘은 뮤지션 볼빨간님과 롤리팝 뮤직 서준호 대표로써 양쪽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인터뷰가 되겠네요. 먼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어볼께요.

 

저희 어릴 때는 기타를 친다거나 음악을 하는 분위기들이 자연스러웠어요. 라디오 프로들도 많아서 심야FM 같은걸 많이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허영만 선생님의 만화 ‘고독한 기타맨’을 보고 나서죠.(웃음) 고등학교 시절에는 스쿨밴드 활동을 했는데, 고1 때 학원에서 일렉 기타를 잠깐 배우다가, 후에 악보를 사서 독학하면서 기타에 많이 익숙해졌어요.

고교 졸업 이후 이성문 씨(현 캬바레 사운드 대표)를 만났어요. 현 비트볼 뮤직 사장인 이봉수 씨는 오프라인 음악감상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고요. 그렇게 셋이서 신촌의 우드 스탁이라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성문 씨가 베이스를 치니까, 저는 자연스럽게 드럼을 맡게 되었고, 허클베리 핀의 리더 이기용 씨를 소개 받아 같이 밴드 조 쿨(Joe Cool)를 결성하게 된 거죠.

 

- 원래 일렉기타를 치셨는데 드럼으로 바꾸셨네요?

 

그 시절 헤비메탈 밴드 'H2O'의 김민기 씨의 드럼 연주를 보고 인상을 크게 받았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활동을 했으니 일렉 기타를 쳤어도 드럼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박자들을 연주하며 합주를 시작했죠.

 

 

77.jpg

 

 

2. 90년 대 초반 당시의 신촌과 홍대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92년 당시에는 홍대보다 신촌이 음악하는 사람이 더 놀기 좋았어요. 그 때 홍대 주차장 골목에 웨스턴 스타일바 '블루스 하우스'가 있긴 했지만 심야영업 하는 곳이 없어서요. 그 당시 음악감상 장소 중에는 신촌의 '러시'가 가장 유명했고, 또 신촌 창서초등학교 뒤에 'CCR'이라는 곳이 새로 생겼어요. 그 때는 BAR '우드 스탁'도 밤 12시까지 밖에 영업을 안했던 때거든요. 그러다 홍대 '더블 듀스'라는 클럽이 심야 영업을 시작했는데, 그 곳에 기본적인 악기가 갖추어져 있는 것을 보고 사장님을 설득해 더블 듀스에서 공연을 했죠. 그리고 95년 정도가 되니 홍대에 '재머스', '프리 버드' 같은 클럽들이 생겨나더라구요.

사실 그 때 홍대 분위기가 참 재미있었어요. 복합문화공간 '곰팡이'나 '인서울 매거진'같은 스트릿 매거진도 생기고 90년대 초반에 비해서 사람들이 문화쪽으로 점점 깨어나면서 새로운 흐름들이 만들어졌거든요. 그런 문화의 흐름 속에서 저도 이성문씨와 함께 96년에 캬바레 사운드 레이블을 설립하게 된거죠.

 

 

78.jpg

* 볼빨간 1집 [지루박 리믹스 쑈!] (1988) / 캬바레 사운드

 

 

3. 98년도에 발매된 1집 앨범 [지루박 리믹스 쑈!]가 나름 주목을 받았는데요. 기존 인터뷰들을 보면 스스로는 그런 분위기를 불편하게 생각하신 것 같던데요.

 

그 앨범은 제가 키치적인 것이나 뽕짝을 좋아해서 만든게 아니라 '킥킥'거리는걸 굉장히 좋아해서 그렇게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 만든 거에요. 다른 한편으론 그때 제가 캬바레 사운드를 운영하던 시절이라 실시간으로 최신 밴드들을 알 수 있었는데, 당시 음악 장르가 굉장히 천편일률적으로 느껴졌어요. 유행을 타는 분위기랄까요. 어떤 장르가 대세면 다 그것만 하는 거죠. 요즘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락음악에 대한 엄숙주의 같은 것도 싫었고요. 

이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옛날 황학동을 생각하며 만든 앨범인데 소위 공부했다는 사람들이 이상한 단어를 조합해 이론적으로 평하는게 달갑지 않았어요.

 

- 그럼 준호 씨가 생각하시기에 음악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관점에 따라서 굉장히 다르겠죠. 락 음악을 하는 사람은 주류 가요를 욕하지만 그게 어떤 점에서는 사람들 귀에 잘 들어오니까 불려지고 인기가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 당시에 저는 사람들이 너무 메탈시절에서 못벗어나는 것이 싫었어요.

 

- 2001년에는 모던락 밴드 ‘줄리아 하트’에서 드럼으로 함께 앨범 작업을 했는데, 볼빨간의 음악과는 많이 다르잖아요. 취향이 다양하신 건가요?

 

볼빨간 음악을 듣다가 줄리아 하트의 음악을 들으면 의아할 수도 있죠.(웃음) 제가 호기심이 많고 다양한 음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많아요. '줄리아 하트'도 그랬고 근래 하고 있는 메탈밴드 ‘파고다’도 그런 거죠.  

 

79.jpg  

 

* 줄리아 하트 1집 [가벼운 숨결] (2001) / 롤리팝 뮤직

(멤버 : 기타&보컬_ 정대욱, 베이스&보컬_ 이원열, 드럼_ 서준호)

 

 

4. 코메디를 많이 좋아하신다면서요? 

 

네. 볼빨간 음악을 만들게 된 정서가 위와 같이 홍대에 대한 반동적인 심정도 있었지만, 80% 정도는 원로 코메디언의 정서가 기반이 된 앨범이에요. 어릴 때부터 제가 코메디 프로그램을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원로 코메디언들을 많이 좋아하거든요. 취향의 차이겠지만 저는 요새 예능 방송은 별로 웃기지 않아요. 음악뿐만 아니라 방송에도 다양성이 있으면 좋겠는데, 예능도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면 거의 다 그런 쪽이더라고요.(웃음)

 

- 코메디언을 꿈꾸셨었는지?

 

제가 숫기가 없는 편이라 코메디언을 꿈꿔 본 적은 없어요. 음악도 무대에 서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안 웃겨도 되는 거잖아요.(웃음)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적당히 음악과 농담을 섞어가면서 공연 때 멘트를 하지만 볼빨간 앨범 활동 당시에는 관객을 웃기는 게 어렵더라고요.

1집 [지루박 리믹스 쑈!]는 캬바레 사운드에서 발매했기 때문에 편하게 활동 했는데, 2집 [야매]는 다른 회사와 작업을 해서 활동 문제로 충돌이 많았죠. 그 당시 유행이 엽기문화였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엽기 쪽으로 방향을 잡는데, 저는 제 음악이 그런 식으로 포장이 되는게 싫었어요. 어떻게 보면 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런 점들도 감수해야 하는데 프로적 마인드가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죠.

 

 

80.jpg

*볼빨간 2집 [야매] (2001) / 드림비트

 

 

- '추억'에 대한 향수가 각별하신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세월이 갈수록 예전 것들이 좋아요. 점점 서울에 정이 떨어지는 것 같고요. 전 골목마다 단독 주택들이 있는 예전의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제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즈음 다가구 주택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이 바뀌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닭장 같기도 하고 너무 각박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좀 아날로그 지향적인 것처럼 들릴텐데 그렇다고 제가 디지털 기계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저희 같이 음악하는 사람들은 디지털 기계가 없으면 큰일났죠.(웃음)

 

 

5. 2000년에 캬뱌레 사운드에서 독립해 롤리팝 뮤직을 설립한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공동대표 이성문 씨와의 견해차이도 있었지만, 그건 그때의 저의 흐름이였던 것 같아요. 60년대 노래중에 '롤리팝'이라는 곡이 있어요. 제가 그 노래를 되게 좋아했죠. 제가 좋아하는 50~60년대의 운치있고 따듯한 분위기의 팝 음악들을 하고 싶어 롤리팝이라는 이름을 지었고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없어 결과적으로 롤리팝은 모던락 음악이 주가 되었죠.(웃음) 그 부분은 사장이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 소속 뮤지션을 선정하면서 중요하게 보았던 점은요?

 

일단 작업의 퀼리티는 보다는 어떤 것이 좋은지 나쁜지 구별할 수 있는 센스를 봤어요. 데모 테이프를 하나 만들더라도 사실 그런 부분이 드러나거든요. 음악적으로든 또 다른 면에서건 촌스럽지 않을 수 있는 '센스' 위주로 보았죠.

 

 

6. 레이블을 운영하면서 음반 작업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요? 

 

글쎄요. 뭐랄까 완성도에 좀 비중을 많이 두긴 하죠. 뮤지션과 계약을 할 때 앨범 발매에 대해 상의를 많이 해요. 제 생각도 너무 빨리 그리고 쉽게 앨범 작업을 하면 음악적 퀼리티가 떨어지기 쉬운 것 같아요. 처음부터 데모의 퀼리티가 일정 수준으로 나오면 상관 없는데, 사실 모든 뮤지션이 그럴 수 없거든요. 분명 날 것 그대로의 매력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아요. 어쩌면 그래서 음반 발매 기간이 길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사실 꼼꼼한 성격은 아닌데 예민한 면이 있어서요. 볼빨간 1집 제작할 때는 제 스튜디오가 아니라서 녹음을 몇번 안했었는데, 앨범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못 덮고 지나가겠더라고요. 그리고 유독 롤리팝 뮤직 소속 뮤지션들이 편집증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해오군도 앨범 녹음을 하며 한곡을 1500번 정도 부르고, 기타를 1000번 이상 녹음 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롤리팝 뮤직은 전용 녹음실이 따로 있어 다행이였죠. 여담으로 조정치군은 앨범작업 할 때 5번 넘게 녹음을 하지 않아서 참 좋았어요.(웃음) 

 

- 유통은 어떻게 하셨어요?

 

유통 같은 경우도 제가 레코드 회사에 근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직접 맡았었는데, 어느 순간 유통까지 하는게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업체에 맡겼다가 다시 제가 직접 하다 몇번 반복했어요. 롤리팝 뮤직 운영 마지막 즈음에는 비트볼 뮤직과 조인트가 되어 홍보와 함께 유통도 맡기게 되었죠.

 

 

81.jpg

 

 

7. 롤리팝의 실제 운영은 어떻게 하셨나요?

 

사실 롤리팝 초기때만 해도 음악은 취미로 했었어요. 레이블도 취미였고요. 전업뮤지션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릴 때 신촌에서 전업뮤지션 형들의 비참한 말로를 많이 봤거든요. 20대 초반에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내리 몇 편 본 느낌이랄까요? 저는 그런게 두려웠어요. 어떻게 보면 좀 비겁한 방법이지만 완전히 발을 담그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러다 스웨터의 세철이를 만나 레이블을 꾸려가면서 더 이상 취미식으로 할 수는 없었어요. 2004~2005년부터는 매진해서 했고, 일산에 사무실도 생겼었죠. 2006년까지는 매진해서 했던 것 같아요.

 

 

- 뭔가 열심히 했는데 성과가 없다고 느끼셨어요?

 

사실 쥴리아 하트 나올 때도 이미 음반시장은 어려웠어요. IMF터졌을 때도 '최악'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사실 최악이라는 말들은 매년 나왔었죠. 그때는 음반업이 제게 천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처럼 제가 제대하고 처음 들어간 회사도 레코드 회사였고 그 전에도 레코드 관련 일을 했으니까.

재미가 있어서 그렇게 했던 것인데 2007~2008년부터는 공연장 가는 것도 너무 싫은 거에요. 질렸다고나 할까요? 공연장에 앉아 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배터리가 다 된 심정이랄까요.

 

- 롤리팝 레이블을 운영하는 동안 개인적인 음악 활동은 어떻게 진행 됐나요?

 

개인적인 음악 활동은 2001년에 발매된 볼빨간 2집 [야매]가 끝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줄리아 하트'나 '볼빨간'등의 활동으로 돈을 번다거나 입지를 다져야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미련도 없었어요. 음악이 하고 싶을 때는 '파고다' 같은 메탈 밴드를 취미로 하기도 하고요.

 

8. 레이블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한계를 많이 느끼셨는지요?

 

좀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제가 인디씬에 오래 있다 보니 재미가 점점 없어지면서 동시에 소속 뮤지션들에게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보나 제작을 비롯해 2007년 이후로 전혀 열심히 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때 즈음 비트볼 뮤직에서 홍보와 유통대행을 맡아준 이유도 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레이블 운영에 관한 딜레마가 계속 있었죠. 롤리팝 레이블 소속 뮤지션들에게도 뭔가 탄력을 받고 앞으로 나갈 동기부여가 되야 하는데 제가 그런 상태였으니 민폐였어요.

 

어차피 레이블로 돈을 벌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운영하며 경제적인 요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요. 고생을 하더라도 앨범들이 한장씩 발매되는 모습을 보며 성취감도 컸고, 무엇보다 '재미'가 저를 지탱해주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재미'가 없어지다보니 점점 힘이 들더라고요. 예전엔 보도자료도 직접 작성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장 쓰는 것도 힘들어지고, 음악적인 아이디어도 부족해지면서 레이블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본격적으로 레이블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으신 시기가 언제 쯤이세요?

 

작년 내내 고민을 했어요. 제가 신중한 성격은 아니지만 천직이라 생각하던 걸 그만하려 하니 결정을 내리기 더 힘들었죠. 그런데 미련이 남아서 다시 레이블 운영을 한다는 식으로 말을 번복하면 안되기 때문에 소속 뮤지션들에게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어요. 올해 5월 정도에 조정치군 앨범 활동이 끝날 때 즈음 발표하려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레이블 운영에 대해 한창 고민할 즈음 계약한 ‘게으른 오후’라는 밴드가 있어요. 멤버들이 전주에서 거주하다가 앨범작업 때문에 상경해서 사무실로 찾아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앨범 작업 사항들을 저에게 물어보는데 그 상황이 미안해서 더 이상 못 참겠더라구요. 그래서 2~3월 즈음에 소속사 뮤지션들에게 문자를 했죠. 사실 그때는 해오군이나 게으른 오후는 비트볼 뮤직으로 이적 문제가 끝난 시기였어요. TV 옐로우 같은 경우는 앨범 한장 계약한 것이었는데 제가 너무 대책없이 놓아버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82.jpg

* 롤리팝 뮤직 옴니버스 앨범 Vol.1 [13th Floor Elevator] (2005) / 롤리팝 뮤직

 

 

9. 롤리팝 뮤직은 나름의 차별성이 있었고 리스너와 음악 관계자 양쪽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레이블을 정리할 때 아쉬운 점은 없으셨어요? 

 

저도 참 신기한 게 미련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일도 없고요. 볼빨간은 작년 지산록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새 앨범도 생각했었는데 잘 할 수 있을지 고민되더라고요. 일단은 취미 정도로 활동할 수 있는 메탈밴드 '파고다'를 중심으로 활동하려 해요. 

그런데 레이블을 그만두게 되니까 인디씬 관련 이야기가 듣기 싫은건 있어요. 그래서 요새는 어떤 음반들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어요. 신보가 나오면 저에게 보내주시지만 잘 안듣게 되더라구요. 이기용 씨에게 최근 발매된 허클베리 핀 라이브 앨범을 한장 달라 했더니 “어차피 안 들을 거잖아”라고 말하더라고요. 아예 안듣는건 아니고 언젠간 들어볼텐데 말이죠.(웃음)

 

- 롤리팝을 10년을 운영하셨는데 자체적으로 평가를 해보신다면 어떠세요?

 

재밌게 잘 놀았던것 같아요.

 

 

10. 다른 레이블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대단하신 분들 같아요.(웃음) 강한게 오래가는게 아니라, 오래가는게 강하다는 말이 딱 맞아요. 사실 음반회사의 수익구조가 음반과 디지털 음원, 행사. 그리고 정말 운이 좋아야 광고CF에 삽입되는 정도에요. 10년전만해도 대학교 축제 때 홍대 인디씬에서 50만원씩 밴드 10팀을 불렀다면, 요새는 500만원 한팀을 부르는 추세라 행사도 쉽지 않죠.

 제가 음반 업계쪽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황이 좋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또 예전에는 음반이 잘팔린다는 기준이 만장이였다면 요새는 천장 넘으면 잘 팔렸다고 이야기를 하니까요. 제작비가 못들어도 천만원 안팎으로 들텐데 기준이 그러니 뮤지션이나 음반 관계자도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인데 힘들죠.

 

- 개인적으로는 어떤 레이블을 좋아하세요?

 

아무래도 친한 걸로는 허클베리핀 이기용 씨의 SHA LABEL이나, 루비살롱, 비트볼 뮤직 정도를 들 수 있겠죠. 그리고 MPMG의 이종현씨가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기획하는걸 보면 정말 비즈니스 감각이 있는 것 같아요. 또 그런 분들이 살아남는 거고요.

 

 

11. 일반적으로 인디씬에 대해 90년대 중반에 시작되서 90년대 후반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보잖아요. 90년대 말 즈음 다시 거품이 빠지고 암흑기이자(?) 긴 평온기를 지나 2009년부터 다시 주목을 받은 셈인데요. 이런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디씬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건 ‘장기하’가 나오면서죠. 사실 그 동안 인디에서 메이저로 가면서 음악이 이상해지는 뮤지션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장기하는 자기의 자리에서 음악적 신념을 지켜가며 대중적 반응을 얻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 하고 싶어요. 그런 친구들이 많이 나오면 다른 뮤지션들도 탄력받지 않을까 싶고요. 정말 바람직한 케이스죠.

 

그리고 90년대 말에 인디씬의 거품에 대한 이야기는 그 당시 몇몇 기획자들이 무책임한 언론플레이를 해서 그렇지 실제 거품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인디씬을 잘모르는 매체들은 그런 기획자들이 제공하는 컨셉을 그대로 가져다 썼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특이한 애들이 홍대에서 음악하는 것으로 비춰지면서 잘못된 인식이 박힌 거라고 생각해요.

인디씬도 돈이 돌아야 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필요한 일이에요. 그런데 그 당시 거품론들은 이 동네가 거품이 있던게 아니라 음악인들이 중심이 된게 아니라 몇몇 기획자들이 무책임하게 붐업을 시켜놓은 부분이 가쉽거리로 이야기 됐던 것이 문제라는 거죠. 

 

- 지금 말씀하시는 몇몇 기획자들이 인디씬의 뮤지션들을 단순하게 신기한 존재로만 보았던 것이 전체적인 인디씬 흐름에 안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

 

사실 몇몇 기획자들은 음악쪽 일을 하면서 인디씬을 단순히 밟고 지나가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계단으로 생각한 게 아닌가 싶어

요. 여기를 발판으로 문화평론가 같은 것이 되는 걸 생각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 과정에서 뭔가 이슈가 될만한 꺼리를 써야 되니까 그랬겠지만 전략이 잘못된 것도 있는데 그런 것들이 후에 부메랑처럼 인디씬에 대한 안좋은 인식으로 돌아왔던 것 같고요.

행히도 지금은 안좋은 인식들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 당시에는 인디씬을 닭머리한 아이들 또는 그냥 희안하고 특이한 애들 이라

식으로만 매체에 비춰졌으니까요. 메이저에 비해 기술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을지 몰라도 예를 들어 해오 군앨범을 들어보면 음악적으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거든요. 음악적으로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음악도 많은데 그저 특이한 음악하는 쪽으로 몇 년동안 매체에서 다루다보니 결과적으로 전략적으로는 틀리지 않았나 생각해요. 여전히 인디 하면 크라잉 넛에 노브레인이잖아요.

'매너리즘에 빠진 가요계에 새로운 좋은 공급원' 같은 방향으로 알려졌다면 인디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겠죠. 그래

서 꾸준히 인디씬을 조명하는 김기자님 같은 분들이 더 의미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요.

 

- 그렇다면 당시 인디씬은 어땠나요?

 

펑크를 하는 드럭쪽과 코코어나 허클베리핀 같은 팀들로 나눠져 있었어요. 그에 비하면 요새는 굉장히 다양한 음악을 하는 팀들이 많아졌죠. 다만 음악을 하는 애들이 음악을 안들으니까 문제지만. 요새는 MP3가 있으니까 음악을 듣는게 쉬워져서 그런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12. 국내 인디씬을 평가해 본다면요?

 

최근에는 확실히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이 많아졌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이만큼 장르적으로 다양해진 것은 mp3의 대중화가 음악 감상을 예전보다 쉽게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제가 음반제작자로써 음반 작업을 하면서 국내 뮤지션들이 사운드의 지표를 외국 뮤지션의 앨범으로 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어요. 본인이 창의적인 사운드를 직접 만들려는 고민이 없는 것이 답답하더라고요. 그런 게 없으니 저도 작업 들어가면 외국 밴드 음악을 레퍼런스로(reference) 들어가면서 사운드를 '이렇게 잡자, 저렇게 잡자' 그러지만 그게 자꾸 반복되니까 답답하죠.

 

- 사운드를 만드데 대한 창조적인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신가요?

 

그렇죠. 잔잔한 기타로 구성된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 앨범 같은 경우 '이런 게 요새 괜찮더라' 하면 다 같은 레퍼런스를 쓰니까요. 이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인 것 같아요. 레퍼런스 삼는 외국 뮤지션들도 사실 따져보면 음악 비슷하게 해온 비슷한 또래 애들인데 '뭐가 문제일까?' 라는 생각을 많이해요.

 

한편으로 뮤지션이 음악을 많이 안들어서 그런가 싶기도 해요. 전 예전부터 뮤지션들은 집에 음반이 한 쪽 벽면을 차지할 만큼 많고 희귀한 엘피들을 구해가며 음악을 들을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그런 뮤지션은 별로 없더라고요.(웃음) 음악을 자연스럽게 듣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대부분 사춘기 때 즈음 음악을 찾아 듣고 음악을 하게 되죠. 때문에, 어릴 때부터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성장하는 외국 뮤지션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3~ 4살부터 비틀즈 음악을 들으며 자라지는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베이스가 취약한 걸수도 있죠.

 

- 인디씬에서 어쿠스틱이 강세인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디씬이나 문화의 주 소비층이 20대 여성과 여고생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어쿠스틱 음악이 접근성이 용이하고 다른 장르의 음악들은 사실상 수용층이 적으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요즘은 일반인과 다른 취향이라는걸 어필하고 싶은 여성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공연을 좀 보러다닌다는 사람들도 예전엔 특정 뮤지션의 공연을 본다기 보다 클럽에서 기획한 공연을 보러갔다면 요새는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 단독 공연을 보잖아요? 그게 사실 15년전부터 있던 문제인데 해결이 안되더라고요.

클럽쪽에서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이 즐기다 가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을 하지만, 요새는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많기 때문에 사실상 지하에서 공연이 아닌 다른 이유로 앉아있기는 힘들 거에요. 카페처럼 인테리어 리뉴얼을 한다고 해도 돈이 많이 들테니 클럽 입장에서는 쉽지 않겠죠. 어쩔 수 없이 클럽은 소극장처럼 공연장의 형태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 예전에 비해 요즘 뮤지션들은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확실히 장르도 다양해지고 실력도 많이 늘었죠. 90년대 초반에는 다들 열정만 있었다면, 요즘은 어린 친구들이 굉장히 전략적으로 음악을 하는 것 같아요.

인디씬의 질이 높아진건 실용음악과 출신들도 한 몫 했죠. 예전에는 실용음악과 출신 뮤지션들은 주로 훵키 스타일로 음악만 들어도 단번에 그쪽 출신인지 알 수 있었거든요.(웃음) 사고가 깨어있는 실용음악과 출신 뮤지션들이 인디씬에 흡수되면서 감각과 실력 둘다 만족시키는 뮤지션들이 많아졌죠. 그렇다보니 요새는 연주 어설프게 해서는 인디씬에서 살아남기 힘들잖아요.

한편으로는 요즘 젊은 뮤지션들이 너무 전략적이다보니(?) 인사를 해야 될 사람과 안해야 될 사람을 구분하는 식으로 인맥, 라인 같은 것이 형성되는 분위기더라고요. 활동한지 1년도 안된 뮤지션들이 어디로 줄을 서야되나 눈치를 보는 상황을 보면 안타깝게 느껴져요. 이런 걸 보면 저희 때와는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83.jpg

* 2010년 1월에 있었던 상상마당 레이블 마켓

'비트볼&롤리팝의 날' 공연 포스터

 

 

 

13. 좋은 음악이 나오기 위해서는 좋은 뮤지션도 많아야겠지만, 관련 인프라가 함께 뒷받침되야 할텐데요. 그런 점을 비롯해 인디씬의 비즈니스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인디씬에서 제작되는 음반들이 좋은 음악이 아니라서 뮤지션들과 관계자들이 경제적으로 힘든 건 아니라고 봐요. 장기하를 보면 운때도 맞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요새는 뮤지션들이 전략적이고 똑똑하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의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반응을 제대로 얻지 못해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죠. 

 

저는 개인적으로 인디씬이 어려운 이유는 소비인구가 적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요. 규모적으로 인구가 1억 정도는 되야 어떤 산업이든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거든요. 게다가 한국 대중음악씬에서는 지상파 위력이 너무 강해요. '마포 라디오' 같은 지역미디어가 잘 운영이 되서 로컬에서 먼저 힘을 받고  피라미드식 구조가 되야 제대로 돌아가는건데, 지금은 역삼각형이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봐도 그렇고 충분히 비즈니스적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이제는 인디음악들을 어떻게 포장할건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인디씬에는 음악을 잘하는 뮤지션들은 충분히 많아요. '10cm'같은 팀은 가요를 주로 소비하는 대중들도 부담없이 듣고 인기도 많잖아요. 그런걸 보면 인디씬과 대중의 경계는 많이 허물어진게 느껴져요. 예전에는 인디음악이 지상파 라디오에 나오기 힘들었지만, 요새는 비중은 적지만 조금씩 나오거든요. 그런걸 보면 점점 상황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여기에 투명한 제작자들이 많아지면 훨씬 상황이 좋아지겠죠.

 

뭐 이보다 더 나빠지겠어요? 장기하의 경우도 그렇지만 음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생기잖아요. 물론 그런 경우는 극소수고 다른 일을 하면서 음악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죠. 레이블을 하면서 소속 뮤지션들이 제대로 반응을 못얻어서 무기력해지는걸 보면서 자책을 많이 했어요. '잘하는 친군데 다른 레이블에 갔으면 더 잘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들이죠. 그런데 또 한편으론 안되는데는 안되는 이유가 있고 잘 되는데는 잘 되는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어찌되었던 뮤지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자급자족이 힘드니까 실의에 빠지는 것 같고요. 올인을 해서 작업을 했는데 결과가 미약하면 힘 빠지죠. 어떨 때는 작업을 정성들여 한 것 보다 대충한 게 더 좋은 반응을 얻을 때도 있는데 그러면 회의가 많이 들어요. 그런데 또 그렇게 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겠죠. 저는 꼼꼼한건 아닌데 예민해요. 작업할 때 마음에 안들면 그냥 못지나쳐요.  

 

- 그러면 볼빨간 1집 같은 경우에는 사운드가 의도된 건가요?

 

의도라기 보다 그때 제가 갖고 있는 능력이 거기까지였어요. 그때는 작업에 그렇게 집착하진 않았고요. 이상하게 레이블 만들고 작업하게 되면서 그렇게 되더라구요. 쥴리아 하트 때는 바비가 영장을 받아놓은 상태라서 시간이 없었고 다행히 바비도 기타 세 번 이상 녹음 안하고 끝냈어요.

 

14. 전에 3호선 버터플라이(이하 3호선) 인터뷰 때 성기완 씨가 3호선의 음악이 다수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먹고 사는 것은 다른 노동을 통해 충족해야 한다고 얘기를 하셨는데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맞다고 봐요. 대중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면 그렇죠.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10만 명에 맞는 음악을 해야겠지만 3호선도 그런 불특정다수를 위한 노래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삼호선 음악 가지고 '이건 왜 돈이 안될까?' 그러면 곤란한 거죠.

 

- 허클베리핀 인터뷰 때 이기용 씨는 이 점에 대해 3호선 음악이 만명, 이만명 정도는 충분히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이라며 안타까워 하시던데요. 

 

기완이형은 대중음악가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그런 말을 하시는 거고요. 기용이가 만약에 자기가 대중음악가라고 생각 한다면 다른 나라에 가서 음악을 해야죠.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는 힘든 일이죠. 음악이 좋고 안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바탕이 안되고 저변이 없으니까요. 아쉬운 문제기는 해요.

 

 

15. 최근에는 어떤 것들에 관심이 있으세요?

 

개인적으로는 야구를 굉장히 좋아하고요.(웃음) 좋아하는 음악을 사서 듣는 행위는 지금도 좋아해요. 제가 레이블을 정리한 건 사실이지만 음악을 아예 안하지는 않을거에요. 메탈밴드 '파고다'처럼 재밌게 느껴지는 활동은 계속 할거고요. 다만 비유를 하자면 조기축구처럼 음악을 취미로 하게 되는거죠. 그래서 이번 인터뷰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어요. 레이블 문을 닫은 시점에 어떤 할 얘기가 있을지... (웃음) 

 

-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음악과는 상관없는 일이고 다른 건 다 음악외적인 일이네요. 우선 메탈밴드 ‘파고다’ 공연이 11월에 있고요. 언제 나올진 모르겠지만 '파고다' 디지털 싱글을 준비하고 있어요.

 

 

 

* 롤리팝 뮤직 레이블 음반리스트

 

 84.jpg 85.jpg

 

86.jpg

 

87.jpg

줄리아 하트_ 가벼운 숨결 (2002)

 

 

 

슬로우 준_ Grand A.M (2004)

 

 

 

롤리팝 뮤직 옴니버스 앨범 Vol.1 [13th Floor Elevator] (2005)

 

 

멜로우이어_ The Vane (2006)

 

 

 

88.jpg

89.jpg

90.jpg

91.jpg

노이즈 캣_ Morning Light (2006) 슬로우준_ Reverse (2007) 스웨터_ Highlights (2008) 해오_ Lightgoldenrrodyellow (2008)
 

 

92.jpg

     
 조정치_ 미성년 연애사 (2010)      

댓글 '0'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제한 크기 : 2.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1. 14 Mar 2011 15:56
    치유의 재즈, 그 영적인 아우라_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 치유의 재즈, 그 영적인 아우라 _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 * 일시 : 2010. 12. 29 (금) 14:00~17:00 (사진촬영 포함) * 인터뷰 장소 : 상상공장 * 사진 촬영 장소 : 홍대 cafe homeo * 사진 촬영 : 40분 *사진: 박... by : 김기자
  2. 14 Mar 2011 15:43
    악마적 아름다움에 대한 순수한 고찰_ 재즈 피아니스트 박진영 악마적 아름다움에 대한 순수한 고찰 _ 재즈 피아니스트 박진영 * 일시: 2010. 10. 27 (수) 17:30~19:30 * 인터뷰 장소: 상상공장 * 사진 촬영 장소: 홍대 피아노 카페 * 촬영 시간: 1시간 40분 *사진: 박창현 * 인터뷰... by : 김기자
  3. 14 Mar 2011 15:33
    롤리팝 뮤직, 10년 간의 궤적_ 롤리팝 서준호 대표& 김기자 [인디속 대담] 롤리팝 뮤직, 10년 간의 궤적 _ 서준호 대표(뮤지션 볼빨간)& 김기자 * 일시 : 2010. 09. 30 (목) 14:50~16:30 * 장소 : 상상공장 *인터뷰: 1시간 40분 *녹취 타이핑 & 정리: 박재윤 *사진: 박재... by : 김기자
  4. 14 Mar 2011 15:26
    그녀만의 다정한 위로 _ 오소영 그녀만의 다정한 위로, 오소영 * 일시 : 2010. 08. 12 (목) PM 8:30~10:15 * 장소 : 상상공장 *사진촬영 : 20분 *인터뷰: 1시간 20분 *녹취타이핑&정리: 박재윤 *사진: 박재윤 *인터뷰&에디팅: 김기자 *인터뷰 참가자:... by : 김기자
  5. 14 Mar 2011 15:22
    힙합계의 이단아, UMC/UW 힙합계의 이단아, UMC/UW 일시: 2010. 3. 31 녹취타이핑: 고서희 사진: 박창현, 김보리 인터뷰&정리: 김기자 UMC/UW 홈페이지: http://www.umcuw.com 1. 최근 근황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힘들게 지내고 있구요.(웃음... by : 김기자
  6. 14 Mar 2011 15:19
    독특하게 일그러진 한편의 괴기스러운 유화, 국카스텐 독특하게 일그러진 한편의 괴기스러운 유화, 국카스텐 일시 : 2010.4.1 17:00~19:30 장소 : 상상공장 사진촬영 : 1시간 인터뷰 : 1시간 반 녹취타이핑&정리 : 조은애 사진 : 박창현 인터뷰&에디팅 : 김기자 인터뷰 참... by : 김기자
  7. 14 Mar 2011 15:16
    광기, 그 이상의 음악 _ 내귀에 도청장치 광기, 그 이상의 음악 _ 내귀에 도청장치 일시 : 2010. 4. 3 18:00~19:00 장소 : 상상공장 인터뷰: 이정아 인터뷰 정리: 고서희 사진: 김보리 에디터: 김기자 내귀에 도청장치 홈페이지: http://cafe.daum.net/naegui/ ◎ ... by : 김기자
  8. 14 Mar 2011 15:13
    몰아치는 모던 록의 폭풍, 메이트 몰아치는 모던 록의 폭풍, 메이트 일시 : 2010. 4. 2 오후 5시~6시 녹취타이핑&정리 : 고서희 사진: 박창현 인터뷰&에디팅 : 김기자 인터뷰 참가자: 메이트, 김기자 메이트 홈페이지: http://www.bemate.co.kr/ ◎... by : 김기자
  9. 11 Mar 2011 18:17
    모험광들의 신나는 락앤록! _ 문샤이너스 ◎ 모험광들의 신나는 락앤록! _ 문샤이너스 일시 : 2010. 4. 3 15:00~16:00 장소 : 상상공장 녹취타이핑: 이승룡 사진: 박창현, 김보리 인터뷰&정리: 김기자 인터뷰 참가자: 문샤이너스, 김기자 문샤이너스 홈페이지: ht... by : 김기자
  10. 11 Mar 2011 18:08
    진화하는 아티스트, 이상은 ◎ 진화하는 아티스트, 이상은 일시 : 2010. 04. 14 (수) PM 4:30~6:00 장소 : 상상공장 사진촬영 : 30분 인터뷰: 1시간 녹취타이핑&정리: 이승룡 사진: 박창현 인터뷰&에디터: 김기자 인터뷰 참가자: 이상은, 김기... by : 김기자
Search Tag
Write
first 1 2 3 4 5 6 l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