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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9일에 있었던 상상 아카데미 문화기획 전문가 과정 강의 모습 지난 수요일, 너무나 오래 간만에 ...

by 김기자  /  on Mar 04, 201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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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 29일에 있었던 상상 아카데미 문화기획 전문가 과정 강의 모습

 

 

지난 수요일, 너무나 오래 간만에 강의가 있었다. 상상아카데미 문화기획 전문가 과정의 첫번째 강의. 이번 상상아카데미는 처음으로 유료로 전환된(희안한 수강료 돌려주기 방식에 역시 상상공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카데미라 문화기획을 꿈꾸는 각양각색의 친구들이 모일 거란 예상이 들었다. 이전에도 두번 정도 상상아카데미에서 인디와 관련된 강의를 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강의를 해야하는 상황이라 약간 고민이 되었다.

 

류감독님은 상상공장의 창단멤버인 김기자의 입장에서 상상공장을 바라보며 느낀 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떠냐며 팁을 주셨다. 우선은 문화기획을 꿈꾸는 친구들이니 '21세기 문화의 이정표'라 일컬어지는 상상공장의 스토리가 무엇보다 궁금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차르트를 보는 살리에르의 심정'으로 10년 가까이 지켜본 류감독님의 족적이기에 옛일들을 하나씩 상기하며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홍대 클럽데이? 떠올리기도 싫은 악몽

 

역시 시작은 너무나 잊고 싶은 클럽데이의 악몽. 101문화센터의 인턴쉽 시절, 사회생활 입문을 너무나 쓰디쓴 기억으로  각인시킨 기획이다. 사람들은 클럽데이 하면 '부비부비'가 생각날지 모르지만 류감독님이 만든 클럽데이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렉트로닉 매니아였던 류감독님은 홍대 댄스클럽을 너무나 사랑했고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술, 담배를 안하는 감독님이 춤을 춘다는 것이 그때는 신기하기도 했었다.^^ 당시만 해도 운영이 너무 힘들었던 댄스클럽들을 살리고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해 전체 수익을 1/n 로 나눈다는 획기적인 발상과 당시 클럽마다 각각의 장르가 다양했던 일렉트로닉 음악을 사람들에게 골고루 맛보게 하기 위한 문화 부페 프로그램이 '클럽데이' 였다. 초기에는 퍼포먼스 공연과 마임, 밴드 공연 등 여러가지 문화 프로그램이 클럽에서 함께 진행되었고 전체 수익의 10%는 지역 문화 발전기금으로 마련, 홍대 문화 발전을 위해 일조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될성싶은 기획은 알아보고 뒤통수를 치는 세력이 있기 마련. 클럽데이를 9회까지 진행하며 발판을 닦아놓을 무렵인 2001년 말, 외부 세력과 결탁한 클럽들이 클럽데이의 카피라잇을 뺏고 류감독님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봤던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다. 10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도 이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류감독님이 직업으로 기획을 하던 것이 아닌 순수하게 기획을 할 때였고 좋아하는 걸 위해서 모든 걸 바칠 때였다. 류감독님이 자살하지나 않을까 가끔 확인을 해야 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사실 이때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도 않고 돌아보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이때까지 10년 동안 클럽데이에 대해 거의 이야기 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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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데이' 자료사진

 

 

진정한 소통이 존재하는가? 클럽데이 트라우마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 클럽데이와 관련된 악몽을 현실에서 보면서 과연 제대로 된 '소통'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는 심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강의 때에도 질문이 나왔으나 나는 음악전문기자로 일을 시작했고, 글쓰기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많은 사람을 조율하고 엮어야 하는 기획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기도 했었다. 하지만 류감독님이 말한 기획자의 기초 덕목인 '소통'에 대한 자질 부족에 대해서는 클럽데이가 만만치 않은 트라우마로 작용한 것도 부인할 순 없다. 기자 일을 할 당시 나는 객관성의 유지를 빌미로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고 홀로 공연을 보고 사무실에서 음반을 듣곤 했다. 간혹 앨범을 들고 찾아오겠다는 사람들에겐 우편으로 보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영리에 의해 얼마든지 극으로 치닫을 수 있는 존재인지 너무나 리얼하게 경험한 20대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멀리서 공연을 보고 혼자 음악을 듣는 일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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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2회 서울월드 DJ페스티벌에서의 이상은

 

 

문화기획, 그 거대한 대륙을 발견하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쓰게 되었더라...위협과 협박으로 더 이상 홍대클럽씬에서 어떤 일도 벌이기 힘들어 지게되자, 우습게도 우리의 시야는 더 넓어졌고 드넓은 문화기획의 대륙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기 까지는 꽤나 오랜 세월이 걸렸다. 2003년 하이서울 페스티벌 메인무대를 류감독님과 둘이서 기획했던 그때. 시청앞 광장에 모임 2만명의 시민과 관의 공식무대에 처음으로 선보여진 인디밴드, 비보비, 실험예술 아티스트, 일렉트로닉DJ들. 델리스파이스와 롤러코스터 마지막에 흩뿌려지던 가랑비와 이상은이 부르던 미친듯한 록버젼'새'까지...가슴이 뭉클해지던 그날의 기억을 아직도 가끔 얘기한다.

 

"그때 이상은이 미친듯이 부르던 '새'를 다시 듣고 싶어" _ 류감독       

 

그 후로도 이상은과는 매해 작업을 해왔고 다른 공연장에서도 종종 봤지만 그런 '새'는 다시는 들어볼 수 없었다. 예민하기로 이름난 이상은이 무대 위에서 미쳐버린 그 날의 그 기적같은 시간을.

 

듣도보도 못한 이런 프로그램으로 관객이 들겠냐는 서울시 관계자들의 우려와 관련 위원들의 만류를 설득하고 안심시키기를 수천번, 페스티벌 전날까지도 시달리던 류감독님의 모습은 그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들 속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마도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음악과 문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엉뚱한 패기와 정성이 만들어 낸 그 거짓말 같은 무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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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사랑 컬쳐 퍼레이드

 

 

실패하면 어때? 상상공장의 저력

 

이후에도 서울사랑 컬쳐 퍼레이드 등 시청앞에서 진행된 기획과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일환인 명동 댄스 매니아 인 서울, 상암록페스티벌 등 간간히 작업을 하며 한편으론 다양한 종류의 실험이 6년간 진행됐다. 파티쪽으로는 스키장, 수영장, 패션쇼, 부페, 놀이동산, 일렉트로닉과 샤머니즘의 접목, 사물놀이와 일렉트로닉의 만남 등 장소와 컨셉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지독한 실험이 계속됐고 고배를 마시는 일도 많았다. 반보 앞서가야 돈을 버는 법인데 류감독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맘껏 저지르며 세네걸음을 앞서가니 이윤창출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느 날 또 고배를 들이키고 뒷정리를 하다가 내가 물었다. 실패할 줄 알면서 왜 저질렀는지를. 류감독님의 대답은 너무나 단순하다.

 

" 하고 싶으니까" _ 류감독

 

세상에 실패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경우엔 실패할 일은 저지르지도 않는 타입이지만 본의 아니게 류감독님 옆에서 숱한 실험과 실패를 보았고 그것이 서서히 균형을 맞추며 반보 앞서가는 지점까지 이른 것을 보고 있다. 아마도 왠만한 사람이면 2~3년 실험하다 지쳐서 선회를 하거나 그만두지 않았을까 싶다. 옆에서 보는 사람도 기가 질릴만큼 끝을 보는 저 대기만성의 스케일에 상상공장의 저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

 

 

김기자, 우리가 만든 세상을 봐!

 

2003년 하이 서울 페스티벌 메인무대의 영향은 실로 컸다. 그해 10월과 이듬해 올림픽 공원과 시청앞 광장에서 서울 사랑 컬쳐퍼레이드를 통해 서울의 숨어 있는 각 방면의 예술장인들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이 진행하게 된 것. 라이브 음악, 실험예술 퍼포먼스, 사물놀이, 퓨전 국악, B-boy 댄스, DJ 파티, 서도소리, VJ 영상, 영상매직 퍼포먼스 등 공연 방면에 있어서도 여러가지 실험들을 끊임없이 벌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신선한 기획은 공무원들에게 설득력을 더 이상 갖기 힘들었고 타협할 수 없었던 류감독님은 서울 사랑 프로젝트를 종료하게 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기획은 상상공장이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로부터 몇년 후 시청앞 광장을 비롯해 세종문화회관 야외무대, 정동 극장 등에서 인디 밴드의 공연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누군가 알리는 일을 한다면 그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동안 고생하면서도 사람들이 잘 몰라줬던 부분이 섭섭하게 생각되었던 나는 류감독님과 시청앞 광장을 지나다 넋두리 하듯 말했다.

 

" 클럽데이도 세계 최초였고, 하이서울페스티벌도 공식행사에 최초로 시도된 기획들을 했고 파티에서는 최초란 최초는 다 석권했지만 아무도 상상공장을 기억하지 못하네요. 곰은 재주만 넘는 건가요? "

 

" 김기자. 그건 작은 생각이야. 문화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어. 봐, 우리가 만든 세상을. 사람들이 알던 모르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가 미친 영향과 세상의 변화를 보라고. "   

 

사실 당시에는 대인배인 척 하는 류감독님이 마땅 찮았고,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로 불안했던 나날들이라 거기까지 이해할 짬밥도 상황도 안됐었다. 상상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오래도록 과외를 그만 둘 수 없었던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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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공장의 류재현 감독님

 

 

미래를 예측하는 천재 기획자, 류재현

 

클럽데이도 그랬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류감독님이 예측한 미래들이 3~4년의 텀을 두고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류감독님이 처음 시에 선보인 B-boy문화는 몇 년뒤 사회적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서울시는 몇 년뒤 서울사랑 컬쳐 퍼레이드의 컨셉을 엠블럼으로 쓴 듯한 컨셉을 들고 나왔으며, 장기하의 미미시스터즈는 사실 몇년 전 류감독님이 록밴드에 댄스팀을 접목시키자며 월드 DJ 페스티벌 밴드 회의 때 진행하던 안건이었다. 그 사이 상상공장을 지나쳤던 수많은 똑똑한 인재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그 시간을 미쳐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2007년 월드 DJ 페스티벌은 9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2008년 즈음부터 류감독님의 미래예측 능력은 1~2년 주기로 가까워졌다. 상상공장엔 직원들이 생겨나고 점차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 해부터는 기획하는 모든 것들이 대박을 터트렸고 방송 3사에서 취재를 앞다퉈 해가는 등 더 이상 실패는 없었다. 그해인 2008년 말부터 나는 [인디 속 밴드 이야기]에 올인하며, 나홀로 항해를 시작하기로 했다.     

 

 

기획자 자질 0% 김기자, 아티스트의 영혼에서 기획자까지

 

상상공장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기획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기자였던 나도 자잘한 스탭일부터 기획, 홍보, 진행, MC까지 많은 일들을 해야 했었다. 기획에 대해서는 단지 내가 찾아낸 멋진 팀들을 무대에 세울 수 있다는 메리트가 젤 컸다고 하면 너무 과하게 들릴런지. 대부분의 밴드들이 큰 무대에 서 볼 기회가 없었던 그 시절에 상암 록페스티벌이나 서울사랑 컬쳐 퍼레이드, 월드 DJ페스티벌은 손에 꼽힐 큰 무대였다. 이밖에도 시나 구등과 했던 많은 작업들이 내게는 밴드들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였고 그렇게 잘 맞지도 않는 기획을 어거지로 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그 시간을 버텼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애저녁에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고, 그 시작부터가 뮤지션들을 아끼지 않았다면 만들지도 않았을 [인디 속 밴드 이야기]였다.

 

2008년 말 [인디 속 밴드 이야기]를 상상공장 내 부서로 독립해 나홀로 항해를 시작하고, 6개월간 하루에 12~14시간 이상 일을 했다. 끝까지 가보고 싶었고 증명을 해보이고 싶었다. 사이트를 개편하고 잡지를 계획하고 에디터들을 뽑고 티칭하고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뭐랄까 갈수록 역부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8년 짬밥도 내가 선장이 아니었기에 다는 알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밤잠을 설치고 앓아 눕기도 하고 헤매기도 하며 지난 2년간 나름 맘고생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그 2년이 8년간 상상공장에서 투탑으로 있던 시간보다 배운 것이 많았다고 하면 그렇게 큰 거짓말은 아닐 것 같다. 10년 차가 되어서야 류감독님의 큰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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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자의 기획 '인디 속 음감회'에서의 모습

 

 

모차르트와 매일 작업하는 살리에르의 심정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모차르트가 살아 있을 때 분명 주변에 친구들과 비지니스 파트너가 있었을 텐데 매일 모차르트를 만나고 회의하고 작업을 하는 기분은 어땠을까? 강의 때 류감독 님을 천재 기획자라고 한 말은 립서비스가 아니다. 상상공장의 뜻인 '상상하는 장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류감독 님의 아이디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어 더욱 신속하고 정확하게 세상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그 통찰력과 타이밍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10년을 옆에서 보아 오면서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많이 들었던 생각은 '모차르트를 보는 살리에르'의 심정이라는 표현이 제일 적절하다. 물론 여기에도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무수한 질투를 견디는 인내심을 길러야 하니 ^^;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에 류감독님 같은 기획자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인간적으로도 이런 성품과 큰 비젼을 갖고 있는 오너와 10년을 일한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기에 그렇게 수많은 청년들이 선뜻 자신들의 소중한 젊음의 시기를 상상공장에 무담보로 내어 준 것이 아니겠는가. 내 20대를 다 바쳐 일한 이곳의 비젼은 아직 세상에 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와 상관없이 그동안의 시간들이 뒤돌아 보면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값지다.  

 

 

느리고 무모하게 꿈을 이루는 사람들, 상상공장

 

강의 후 한 학생이 메일을 보내왔다. 메일에는 다른 용건과 함께 류감독님의 찬양일색이었던 프리젠테이션이 처음엔 어색했으나 뒤로갈수록 납득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내 강의는 이렇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이토록 느린 방법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사람에 대한 10년간의 이야기다. 단순히 천재기획자 류감독 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가지 일을 진행하며 보고 느낀 생생한 현장을 수강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인디 속 밴드 이야기]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 이야기 할 순 없었지만 한 밴드의 길거리 공연 연행사건으로 인해 시작되어 1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이 말도 안되는(?) 무모함과 느림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런 방법으로도 이렇게 큰 지표를 세우는 상상공장이 있으니 여러분은 스스로에게서 더 큰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솔직한 이야기에 조금은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수도 있겠지만 포장하는 것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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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바로 미래의 기획자, 상상아카데미 수강생들

 

 

기획자 최고의 자질? 꿈을 이루는 최고의 기술!

 

나는 기획을 열망하지도 않았고 류감독님에 의하면 심지어 기획의 기초라는 '소통'에 대한 자질도 제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을 걸어온 지금, 내겐 길이 보이고 성공의 문이 보인다. (물론 이 문을 열고 안열고는 강의 당일 날도 얘기했듯이 개인의 취향과 성향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러분도 어떤 일을 10년을 하게 되면 보기 싫어도 길이 보이고 문이 보일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할 수도 있다. 그토록 기획을 열망하다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온 여러분들이 아닌가! 사실은 강의 때 류감독님이 한 얘기와 내가 한 얘기는 일맥상통이다. 끈기가 곧 버팀이요. 남과 비교하면 버티기 어려워지고, 저지르지 않으면 버티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버티기 위해선 열정이 필요하고 비젼이 필요한 것이니 사실 이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된다.

 

'신념을 가지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류감독 님의 메세지는 내 입장에서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고 그에 매진하라'는 말로 해주고 싶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절대 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만약 벌써 그것이 시작이 되었다면 시간이 쌓이는 그 과정 속에서 여러분은 이미 행복해 질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기획자의 최고의 자질, 아니 꿈을 이루는 최고의 기술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망설인다해도 시간은 계속 가게 되어 있다. 차라리 후회하더라도 저지르고 습득하고 보완하는 것이 더 많은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이후의 길과 성공의 문은 덤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으니 선택은 각자의 취향과 성향에 따라! 열정으로 불타는 청춘들이여, 여러분의 갈길에 굳건한 건투를 빈다!      

 

           

글/김기자

강연 사진/박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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