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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재즈 아카데미 재학 당시인 2007년,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그녀는 이름난 뮤지션이었다. 클래식을 전공...

by 김기자  /  on Mar 04, 2011 14:50

생각해 보면 재즈 아카데미 재학 당시인 2007년,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그녀는 이름난 뮤지션이었다. 클래식을 전공하고 버클리로 유학, 맨하튼 음악대학 석사까지 공부하고 돌아온 정석코스를 밟은 케이스. 재즈 뮤지션으로써는 유별나게 자작곡이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었고, 라이브가 더 좋다는 이야기에 학생들이 공연을 체크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때는 그녀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질 못했다. 

 

 

 

아름다운 환영을 보다, 겨울바다   

 

기자로 복귀하고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라이브 클럽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2009년 2월 20일 재즈 클럽 에반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그녀는 4집 앨범 녹음을 위해 그 다음 주 뉴욕으로 출국할 예정이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4집 앨범에 수록될 곡들을 연주하는 자리였다. 콘트라베이스 이순용, 드럼 오종대로 쟁쟁한 세션들과 피아노 트리오 구성으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강렬하면서도 중후한 터치, 너무나 아름다운 자작곡들과 우아한 사운드를 들으며 생전 처음 보는 뮤지션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마치 아주 견고한 아름다움을 보는 듯 무언가 경건해지는(?) 기분을 뭐라고 해야할까. 

 

 

01.jpg

* 그녀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갔던 작년 제주도의 바다  

 

 

이윽고 마지막 곡. 제목이 미정인 그 곡은 '겨울 바다'를 보고 썼단다. 곡이 시작되는데 심장에 칼날이 박힌 듯 가슴팍이 아파왔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눈앞에 이미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가방을 뒤져 잡히는 종이 아무데나 그 장면을 써내려갔다. 무수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그만큼 감내해야 하는 고통들이 보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이라는 알 수 없는 거대한 질문 앞에서, 망망대해에 선 그녀의 얼굴에 한 줄기 눈물이 흘려내린다. 핏빛으로 물든 수평선의 타는 듯한 안타까움.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서글픈 깨달음이 지긋이 명치 끝을 누른다.

 

공연이 끝나고 주섬주섬 눈물을 훔치고도 한참을 멍하니 않아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음악이 존재하는 걸까?' 내 눈과 귀는 이미 그 메세지와 그림을 보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새벽까지 뒤척이며 잠을 설치는 날이 얼마간 이어졌다. 그날의 라이브를 들으며 끄적였던 글들을 정리했다. 그 글은 아무도 모르게 전체 메일에 동봉되어 나만의 의식으로 치뤄졌다. 

 

 

부서지는 유리조각 같은 햇살

날카롭게 빛나는 태양이 손끝을 베면

현기증 나는 어린 시절

 

눈부시게 아린 치기 어린 젊음도

불어오는 바람, 시린 눈물에 지워지고

모래알 흩어지는 이 곳

 

그대를 바라보는 그 곳

 

강하고 짙은 고동색

마호가니처럼 단단하고 붉은

견고한 우아함.

 

결코 닿을 수 없는

그대의 막막함 속에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알면서도 묻네

 

- winter sea -

 

그녀의 음악을 떠올리면... 심장이 저며지듯 아프다.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는 이유가 뭔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음은 

밤새 꼼짝도 못하고 새벽을 서성인다. 

 

알면서도 묻고 싶은 어리석음은

이제 그만 묻으라 한다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그녀의 고백에

만족해야 할 시간.

 

심장을 꽤뚫는 고통으로도 충분치 못한 번뇌가 

잉크빛 멜로디에 번진다.

 

2009.06.17 김기자

 

 

02.jpg
* 좌측부터 피아노 송영주, 콘트라베이스 이순용, 드럼 오종대, 클럽 오뙤르 라이브


 

음악으로 치유받다, Love naver fails

 

그렇게 한달여 시간이 흘러 뉴욕에서의 앨범 녹음을 마치고 귀국 한 그녀의 첫 클럽 라이브. 마법같았던 그 전 공연과는 달랐지만 멋졌고 연주 역시 훌륭했다. 그녀는 모던하게 인사를 나누고 공연장에서 사라졌다. 그 후 몇 번의 공연취재를 통해 안면을 익힌 뒤 그녀에게 '문제의 그 곡'에 대해 물어봤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대답을 피하는 분위기에 할 수 없이 그날 음악이 내게 보여줬던 광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 그걸 어떻게 알았죠? 제가 앨범 전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그것이에요. 특히 그 곡이 핵심이죠. 정말 신기하네요.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갖고 계신가봐요."

 

 

가사도 없는 재즈 음악에서 메세지를 어떻게 읽는단 말인가...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멀리서 그녀를 지켜 보며 조금씩 궁금해진 것은 이런 뮤지션이 어떻게 만들어 졌냐는 것이었다. 세간에서는 그녀에 대해 클래식을 기반으로한 탄탄한 기본기와 여성임에도 강렬한 터치, 대중성을 지녔음에도 완성도 있는 음악을 보여주는 작곡 실력과 연주력을 이야기한다.  

 

내게 그녀가 처음 보여준 재즈의 모습은 아름다움이었다. '재즈가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일 줄이야.' 마치 아주 고급스러운 소파에 앉아 있는 듯 그녀의 음악은 편안하게 다가왔다. 스윙하지 않으면서도 기분 좋게 그루브한 느낌과 그녀만의 스타일은 유럽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는 듯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여러 번 라이브를 보면서부터는 도대체 저 톤과 사운드가 어떻게 나오지는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재즈 클럽에서 여러 피아니스트들을 봤지만 이건 단순히 강렬한 터치라고만은 표현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마치 자석이 달린 손가락인 양 그녀가 피아노에 손을 대면 뭔가 특별한 자력이 생긴달까? 성스럽다고 하면 이해가 갈런지. 영적이라는 말이 그나마 가장 근접한 것 같다. 

 

살면서 힘든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지난 해 가을, 그 어떤 음악도 위안이 되지 않는 시간이 있었다. 어떤 소리도 귀를 통과하지 못하고 그 무엇도 위안이 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무난한 발라드로만 생각했던 4집의 'Love naver fails'가 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곡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새벽 산책길을 함께 걸으며 축쳐진 어깨를 다독이던 그 곡은 사실 아름답다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양수에 담긴 태아처럼 궁극의 평온한 상태랄까. 그녀의 음악에 그렇게 담겨 '영적인 출렁임이 가득한 치유'를 받으면서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견뎌나갔다.   

 

  

 

2년 만의 프로포즈, 그녀와의 인터뷰

 

그렇게 그녀의 음악과 운명적인 조우를 한지 2년이 다되갈 무렵, 드디어 인터뷰 할 시점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즈계의 신성인 피아니스트 박진영 군을 인터뷰하며 뭔가 자신감이 붙은 것도 있었고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뉴욕에 공부하러 떠난 그녀가 지난 연말 공연을 위해 내한했고, 오래도록 기다렸던 인터뷰가 진행됐다. 현재 재즈 계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그녀를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도 되었지만 인터뷰 준비를 위해 자료조사를 하면서 몇가지 걱정스런 부분도 있었다.

 

세간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의 음악에서 느껴지던 그 성스러운 기운과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은 어쩌면 그녀의 반석같은 신앙에서 기인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또한 이제껏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모던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천진함을 비춰야 할 수도 있다. 기자적인 입장으로 나는 이러한 뮤지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너무나 궁금했고, 다른 뮤지션과 청자들이게 이러한 뮤지션을 소개하고 그 뿌리는 찾아가는 작업을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어디까지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의 문제는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2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마치자 "이렇게 오랜 시간 자세하게 질문한 인터뷰는 정말 처음이네요" 라며 그녀가 웃는다. 방대한 리서치와 음반 감상, 여러 번의 라이브 공연까지 이렇게 몇 년이라는 시간을 지켜보고 공들여 하는 인터뷰이니 나에게도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된다. 무대 위의 모던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천진한 그녀의 의외의 모습에 웃음이 나는 순간도 있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잠시 않아 있던 와중 왠지 모르게 '이제 기자를 그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에의 부족에 대해 항상 생각해 왔던 지난 10년 간의 시간들. 너무나 우습게 그 짐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 이제 정말 충분하다.'  텅 빈 충만감이 나를 감싼다.  

 

그녀의 마지막 라이브 공연. 세션은 달랐지만 처음과 같이 클럽 에반스였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자리에 앉았다. 클럽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로 다시 그 기운이 흐른다. 1부가 끝나자 서서히 몸에 힘이 돌아 오는게 느껴졌다. 보통은 공연을 보면 더 피곤해지는 법인데 신기한 노릇이다. 2부까지 공연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난다. 한참을 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문득 사운드의 비밀을 알게 됐다. ' 그래, 이것은 그녀가 하는 일이 아니다.'

 

한달에 20일 이상 공연을 봤던 시간들이 희미해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음악들을 만났고 숱한 라이브를 봤지만 이런 특별한 경험은 다신 힘들겠지... 10년 간 음악을 낚으며 살아온 김태공의 삶에 대한 선물이었을까? 그녀의 음악은 이렇게 각별한 추억으로 내 가슴속에 남는다.

 

 

'이 기적같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더 많아졌으면.'

 

 

우리의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살면서 그녀의 음악의 도움을 받아야 할 날이 숱하게 많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내 고민은 끝나지 않았고 쓰지 못한 글들은 유통기간을 훌쩍 넘어 버렸지만, 손을 내밀어 Play를 누르면 그녀가 말을 건넨다. Everything is OK !  이제, 다시 시작인가 보다. 

 

 

2011/1/26

글 /김기자 

사진 / 김기자, 유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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